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은 자신의 책 '제로 투 원'에서 기업가 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기업가 정신이란 결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실험해 보는 것을 말한다.
사업의 일부인 마케팅에서도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어떤 마케팅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실험을 반복하며 우리에게 높은 순이익을 안겨주는 마케팅을 찾는 것이 성장의 유일한 정답이죠.
정답이 있음에도 많은 기업들이 이 정답을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1. '이것만 하면 매출이 뛴다'라고 속삭이는 일부 대행사, 강사, 인플루언서들의 달콤한 유혹
2.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1은 최대한 빨리 떨쳐내야 합니다. 저런 얕은 유혹에 계속 넘어가면 그들에게 돈만 쓰다가 사업이 침몰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 실험을 반복하다가 마주하는 실패는 '경험'과 '통찰'이라도 안겨주지만, 유혹에 휘둘리다가 마주하는 실패에는 좌절과 원망만 남습니다.
마케팅으로 사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케팅 실험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시스템 안에서 창의적인 실험을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오늘은 이 시스템의 기반이 되는 4단계 실무 프로세스를 소개해드립니다.
바로 시작해 볼까요?
작은 기업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제품을 출시할 때 거의 공식처럼 수행하는 몇 가지 마케팅 업무들이 있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만들어둔 '필수 마케팅 체크리스트'를 순서대로 처리하듯이 말이죠.
상세페이지 제작 후 상품을 세팅한다
스토어 리뷰 및 블로그 리뷰 작업을 몇 개 해둔다
인스타그램 채널을 만들고 런칭 소식을 알린다
네이버 혹은 구글 키워드 광고를 돌린다
메타 광고도 돌린다
인플루언서 협찬도 한다
...
물론 이런 업무들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마케팅을 왜 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생략된 채로 그저 '다들 이렇게 하니까' '아무렇게나' 시도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다음 마케팅 플랜을 정하는 기준 역시 '남들이 많이 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요.
어떤 마케팅을 실행할 땐 최소한 아래 4단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도는 것이 한 번의 실험입니다.
모든 실험의 과정과 결과, 실험을 통해 얻은 통찰은 우리 내부에 차곡차곡 기록으로 쌓여야 합니다. 그래야 이 사이클이 반복되었을 때 우리의 실행 퀄리티도 점점 더 높아집니다.
1️⃣ 문제 정의
창업가와 마케터 모두에게 실행력은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다만 최소한의 고민은 필요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무작위 실행으로는 결과도, 교훈도 얻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의 성장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그 걸림돌을 제거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내려보세요. 걸림돌을 찾을 땐 마케팅 수단이나 채널에만 매몰되지 않습니다. 고객의 인식, 제품, 시장까지 넓혀서 찾습니다. 이 세 가지는 창업자는 물론 마케터의 업무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입니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이게 가장 큰 걸림돌일 거야' + '이렇게 하면 그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가정'해보는 겁니다.(=가설) 우리가 정의한 문제가 실제 문제였는지는 첫 실험이 끝난 이후에 (혹은 여러 차례의 실험이 끝난 이후에) 알 수 있습니다. (=검증)
2️⃣ 실험 설계
모든 마케팅은 특정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 그들의 행동이나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실행됩니다. 마케팅 실험 설계에는 다음 5가지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1.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청중)
: 이번 실험의 가장 이상적인 타깃 고객을 정의합니다.
2. 어디에서 말할 것인가 (채널)
: 그 청중이 머무는 채널을 선정합니다.
3. 어떤 인식을 심을 것인가 (인식)
: 청중이 우리 메시지를 듣고 가지게 될 생각을 설계합니다.
4. 어떻게 말할 것인가 (크리에이티브)
: 청중, 채널, 임팩트를 고려한 글, 영상, 이미지 등을 기획합니다.
5. 어느 정도의 시간, 비용 투자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가 (목표)
: 우리가 투자해야 할 자원과 얻고자 하는 결과를 구체적인 수치로 표현합니다.
3️⃣ 실행
설계한 실험을 실행으로 옮깁니다. 실행을 하는 데 있어 학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때 AI나 다양한 전문가들의 콘텐츠를 참고합니다. (대행사를 쓰더라도 문제 정의나 실험 설계는 반드시 내부에서 직접 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정 기업의 마케팅 플레이북이나 전문가의 조언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습니다. 우리 조직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 우리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찾아가며 실행합니다. 우리만의 플레이북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겪은 시행착오와 이를 해결하는 노하우 등을 기록해 두면 좋습니다.
4️⃣ 실험 리뷰
실험이 끝나면 참여자들이 모여 그 실험을 리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어떤 마케팅 실험이 진행됐느냐에 따라 리뷰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한 아래 항목들은 포함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1) 결과 데이터
2) 그 데이터에서 얻은 통찰 (고객, 시장, 제품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합니다.)
3) 실험 과정에서 발견한 또 다른 문제
4) 다음 마케팅 실험 아이디어
일의 큰 맥락을 모든 팀원이 파악할 수 있고, 우리의 생각과 실행이 자산으로 축적될 수 있는 '반복 가능한 사이클'을 만드는 것이 지속 가능한 시스템의 핵심입니다.
'어떤 곳이 이렇게 해서 잘 됐다길래' 막연하게 5가지 마케팅을 시도하는 팀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실험을 설계하고, 실무를 직접 익히며 실행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을 5번 거친 팀. 둘 중 어느 팀이 더 빨리 성장에 가까워질까요? 이 시도가 10번, 20번으로 늘어나면 그 차이는 얼마나 더 벌어질까요?